당(唐)

대당(大唐 618-907)은 중화문명의 황금시대였다. 수왕조(隋朝 581-618) 말년에 천하가 큰 혼란에 빠지자 이세민(李世民)이 부친인 당왕(唐王) 이연(李淵)을 움직여 617년 태원(太原)에서 병력을 일으켜 무덕(武德) 5년(622년) 천하를 평정했다. 이세민은 탁월한 군공(軍功)으로 ‘천책상장(天策上將)’에 책봉되었고 무덕 9년(626년) 제위를 이으니 묘호(廟號)를 태종(太宗)이라 했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정관의 치(貞觀之治)’란 바로 당태종의 연호인 정관에서 유래한 것이다.

당태종은 시호(諡號)가 ‘문무대성대광효(文武大聖大廣孝)’ 황제로 탁월한 군사적 재능을 갖췄을 뿐만 아니라 뛰어난 시인이자 문장가, 서예가이기도 했다. 그는 문학관(文學館)을 세우고 과거를 시행해 인재를 등용했으며 뛰어난 안목으로 적재적소에 인재를 활용했다. 뿐만 아니라 간언(諫言)을 잘 받아들였다.

대당(大唐) 제국은 무공이 혁혁해 서쪽으로는 지금의 카자흐스탄까지 진출했다. 하지만 당태종은 일방적인 무력지배보다는 선진적인 문화와 개명(開明)한 정치를 앞세워 소수민족들이 자발적으로 당에 귀부(歸附)하게 했다.

당태종은 백성을 소중히 여겼다. 정관 시기는 중국 역사상 정치가 가장 투명하고 사회가 가장 안정되었으며 백성들도 편안하게 생업에 종사해 범죄율이 가장 낮았다. 사서(史書)에는 “상인들이 노숙을 해도 도둑맞을까 두려움이 없었고 감옥은 늘 텅 비었으며 사람들도 문단속을 할 필요가 없었다. 풍년이 자주 들어 쌀값이 저렴했다. 장안(長安)에서 영남(嶺南)까지, 산동(山東)에서 해안가에 이르기까지 식량을 준비하지 않아도 길에서 공급받을 수 있었다”라는 기록이 있다.

당은 중국 역사상 보기 드문 전면개방의 시대였다. 세계 각국에서 사신이나 유학생을 파견해 자발적으로 중국문화를 학습했다. 상업, 문화, 종교 등의 방면에서 당은 오는 사람을 막지 않고 누구나 받아들이는 포용정책을 펼쳤다. 당시 장안에 거주하던 외국인 숫자만 10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당에 조공을 바친 나라들은 약 400개에 달한다. 때문에 시인 왕유(王維)는 “구중궁궐 대문이 열리면 만국의 벼슬아치들 황제에게 절을 올리네(九天閶闔開宮殿,萬國衣冠拜冕旒)”라고 노래했다.

대당성세(大唐盛世)는 또 시(詩)의 전성기였다. 이백(李白), 두보(杜甫), 왕유(王維), 백거이(白居易) 등 많은 뛰어난 시인들이 등장했다. 당은 특히 ‘정관의 치’에서 ‘개원성세(開元盛世)’에 이르기까지 약 130년간 풍요와 번영을 누렸다. 천보(天寶) 14년(755년) ‘안사의 난(安史之亂)’이 발발하면서 쇠퇴기로 접어들었다.

남북조(南北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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