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어 중의 하루
오전 7시50분
삐리리 삐리리
*5분 후 다시 알림*
오전 7시55분
삐리리 삐리리!
*5분 후 다시 알림*
투어 중에 내 하루 일과는 많은 이들과 마찬가지로 알람 소리와 함께 먼저 스누즈 버튼(5분 후 다시 알림)을 찾는 것으로 시작된다. 서서히 의식이 회복되면서 머릿속에 희미하게 오늘이 어떤 날일까 하는 생각이 떠오른다--바쁜 날 아니면 한가한 날? 내 두뇌가 완전히 켜짐 상태가 되자마자 답이 명확히 떠오르고 몸에서는 잠이 싹 달아난다. 오늘은 바로 첫 공연이 있는 날!
굿모닝 월드! 이제 시작할 때다.
오전 8시50분
호텔에서 극장으로. 무용수들은 우리 투어 전용 버스를 타고 극장으로 간다 (참고로 프로덕션과 무대 설치 팀은 2시간 전에 일찌감치 떠났다). 나는 아침을 꼭 챙겨먹는 사람이라 긴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충분한 에너지 섭취를 위해 시간을 넉넉히 두고 일어나는 편이다. 아침형 인간이 아닌 다른 단원들은 진한 커피 한 잔에 토스트 한 조각을 들고 버스에 오른다.
오전 9시30분
워밍업 클래스. 투어 중에는 우리 션윈 본부에 있는 것처럼 넓은 무용 스튜디오를 쓸 수 없기 때문에 워밍업 시간을 갖기 위해서는 번뜩이는 재치와 융통성이 필요하다.
많은 경우 극장 로비를 활용한다. 난간은 훌륭한 무용 바가 된다 (난간이 없을 때는 아쉬운 대로 카운터, 높은 의자, 심지어 출입문도 이용한다). 계단은 요가블록을 이용해 다리찢기 연습을 하기에 좋다. 엘리베이터 문은 또 반사가 되어 전신 거울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하지만 로비에 크리스탈 샹들리에가 낮게 걸려 있으면 점프 할 때 머리를 조심해야 한다. 로비 바닥이 기울여져 있으면 균형 감각을 시험하기에 좋다. 대리석 바닥은 특히 겨울에 댄스 슈즈를 신은 상태에서는 정말 미끄럽다. 하지만 이 단점 또한 회전 횟수를 두 배로 늘리는 이점으로 바꿀 수 있다. 카펫은 스트레칭 하기에는 좋지만 수백 번 킥 연습을 하고 나면 댄스 슈즈 토 부분에 그 타격이 고스란히 남는다.
오전 11시30분
점심시간은 많은 소중한 순간을 공유하는 때다. 너무나 훌륭한 안심구이를 극찬하거나 달콤한 디저트를 맛보고 재미 있는 이야기를 나눈다. 점심 시간은 강도 높은 오전 연습 시간 후에 찾아 온 휴식 시간이라 더욱 좋다. 점심 이후에는 느긋하게 드레싱룸으로 가서 음료수를 홀짝거린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료는 빅 사이즈 핫초코라떼.
그 다음은 다시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다. 바로 매일의 명상. 명상은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머리를 더욱더 명석하게 해 준다. 나에게 30분 결가부좌가 낮잠보다 더 많은 휴식을 준다.
오후 1시40분
무대 설치 및 점검. 사운드 점검이 진행된다. 이 때 무용수들은 공연 의상과 소품을 정리해 둬야 하는데 아주 조용히 움직여야 한다. 음향 점검은 무대 준비에서 가장 중요한 과정이다. 중국 5천년 문화를 2시간 공연에 담는다는 것은 각 무용수가 한 공연에 12벌이 넘는 의상을, 경우에 따라 1분 안에 갈아 입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서 드레싱룸에서는 속도와 정리가 핵심이다. 실수가 없도록 하기 위해 빠진 것이 없도록 항상 세 번을 확인한다.
모든 무대가 다르다. 거의 직사각형에 가까운 무대가 있는가 하면 아주 좁은 무대도 있다. 앞무대가 18m인 경우가 있는가 하면 어떤 곳은 절반 밖에 안되기도 한다. 무대 안쪽으로 올수록 점점 좁아지는가 하면 어떤 무대는 점점 넓어진다. 어떤 무대는 약간 경사가 있다. 각 무대마다 우리는 정렬 대형의 간격을 조정하고 (어려운 삼각형 형태, 다양한 각도의 대각선, 어려운 교차 형태 등등) 혹시나 있을지 모를 문제를 점검해 본다.
오후 3시30분
그룹 리허설. 모든 팀이 무대에서 작품 서너 편을 함께 연습하면서 모든 요소가 잘 들어맞는지 확인한다. 이 때 무대 안팎에서 놀라운 발견을 하기도 한다. 앞무대에 튀어나온 곳을 조심할 것! 다리 막이 여러 겹일 때 무대로 입장하고 나가는 지점을 확인할 것! 의상을 재빨리 갈아입으러 갈 때 라이언킹 종이 모형에 부딪치지 않도록 조심할 것! 관객이 보지 못하는 장면이 또 하나의 공연이 된다.
오후 5시00분
저녁식사는 공연을 마칠 때까지 버틸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채우는 시간이다. 네스프레소 커피머신으로 바로 가는 단원들도 있지만 나는 고기, 채소, 따뜻한 스프를 좋아한다. 물론 디저트도 잊지 않는다. 설탕을 줄이려는 단원들도 있지만 나에게는 산소통이나 마찬가지다. 식사 후에는 항상 컵 케익 하나나 둘을 집는다.
오후 5시45분
분장. 이제 머리를 공연용 쪽찐 머리로 단단히 묶을 때이다. 나는 이 쪽 머리를 “머리카락 감옥”이라 부르곤 한다. 그리고 메이크업도 한다. 공연 전 1시간 남짓 몸을 풀고 점프, 회전, 팡센, 공중돌기 등 공연에서 선보일 테크닉을 연습한다.
저녁 7시00분
무대 막이 내리고 객석이 열린다. 첫 작품 의상으로 갈아 입은 후 모든 것을 세 번 씩 점검한다. 모든 출연진이 무대 뒤에 모이면 두꺼운 무대 막 뒤로 숨죽이며 얘기하는 관객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저녁 7시28분
“신사 숙녀 여러분, 공연 시작 전에 간단히 안내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 때가 되면 모두가 제 위치에 서서 사회자가 공연 전 안내 방송을 마치자 마자 시작할 준비를 한다. 무용수들은 흥분되어 있고 안내 방송이 끝나기 전에 모두에게 행운을 빈다. 멀리서 서로에게 악수를 하고 극적인 몸짓을 하는가 하면 소리없이 잘 하라고 격려한다.
저녁 7시30분
‘공~’이 울리는 소리와 함께 이제 공연 시간! 모든 션윈 공연은 공 소리와 함께 시작된다. 무대 막이 오르고 새하얀 구름이 넘실거리며 아름다운 장면이 펼쳐진다. 80명의 예술가가 함께 무대를 살아 숨쉬게 하므로 그 에너지가 피부로 느껴질 정도다. 이 순간 우리가 지난 반년간 해 온 작업이 한데로 합쳐져 일순간에 하나가 된다.
저녁 9시42분
마지막 작품이 끝나고 무대 막이 내리면, 오늘 하루를 마감하게 된다. 무용수들은 무대에서 모여 오늘 공연에 대해 정리해 본다. 경험을 통해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모두에게 유익한 시간이다. 팀이 든든하게 뒤를 받쳐 주기에 삶이 그렇게 힘들어 보이지 않게 된다. 힘든 일도 조금은 더 쉽게 해낼 수 있다.
저녁 9시45분
화장을 지우고 정장으로 갈아입은 다음, 버스로 향한다. 이쯤이면 지칠 대로 지쳐 있지만 하루 중 가장 좋을 때다 (물론 다음 공연 도시로 떠날 때면 한 시간 남짓 짐을 싸야 한다. 이 때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된다).
호텔로 돌아올 때 모두가 공연, 간식, 그리고 즐거웠던 일에 대해 수다를 떤다. 물론 내 머리카락도 감옥에서 벗어난다.
저녁 10시30분
뜨거운 샤워를 마치고 나면 침대에 털썩 쓰러져 이불 속을 파고 든다. 잠으로 빠져들기 전 만족감과 성취감이 조용히 밀려 온다. 마치 높은 산을 등반해 정상에 우뚝 섰을 때 느끼는 그런 기쁨이다. 그 느낌은 초콜렛의 달달함과도 견줄 수 없다.
이내 꿈나라로 깊이 빠져들면서…내일은 또 바쁜 하루가 되겠구나 생각이 든다. 무엇이 기다리고 있든 준비가 되어 있다.
신디 차이 (Xindi Cai)
무용수
2019년 3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