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아온 시간의 부메랑
지난달 말, 우리는 링컨센터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약속했던 대로, 지난 몇 시즌 동안 사랑받아 온 션윈의 대표 작품들을 선보였고, 공연은 큰 호응 속에 끝났다. 세계 최고의 공연장 가운데 하나에서 무대에 설 수 있었던 것은 더없는 영광이었다.
열나흘간의 짧지만 달콤한 ‘여름 휴가’를 마치고 돌아오자, 곧바로 다음 공연을 준비해야 했다. 준비 기간은 고작 3주. 그것도 몇 년째 무대에 올리지 않았던 작품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하루하루는 통조림 속 정어리처럼 빽빽하게 채워졌다. 우리는 무용 연습실에서 동작을 다듬고, 오케스트라와 함께 무대 리허설을 진행하며, 의상과 소품을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나는 ‘가발 파트’의 고참 단원으로서 창고를 여러 차례 오르내려야 했다. 문제는 머리 장식들이 3층에 보관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계단 오르는 일을 몹시 싫어하는 나로서는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어쩌면 쿵푸팬더보다 더 싫어할지도 모른다. 하루 종일 춤을 추고 난 뒤, 마지막으로 마주하고 싶은 것이 바로 계단이기 때문이다.
처음 계단을 올랐을 때는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난간에 몸을 의지한 채, 헐떡이며 한 걸음씩 겨우 올라갔다. 매 계단이 체력을 시험하는 고비처럼 느껴졌다. 마침내 꼭대기에 도착했을 때의 안도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잠시 숨을 고르며 충격(?)에서 벗어난 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전등을 켜고, 한쪽에 따로 마련된 작은 방으로 걸어 들어갔다. 머리 장식이 보관된 곳이었다. 마치 보물을 찾는 기분이었다. 얇게 먼지가 내려앉은 상자들을 하나씩 열어보았다. 그 안에는 시간이 멈춘 듯한 ‘타임캡슐’처럼 머리 장식들이 들어 있었다. 어떤 것들은 무려 4년 전, 마지막으로 정리해 넣은 이후 처음 다시 보는 것이었다. 이 장식들은 세계 곳곳을 함께 누비며 무대에 올랐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20년쯤 지나 이것들을 ‘골동품’이라 부르며 내놓는다면, 그 가치는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오랜만에 다시 맞닥뜨린 작품들은 동작이 잘 떠오르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네 번의 투어에 걸친 안무를 머릿속에 모두 담아두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예전 공연 영상을 찾아볼 수밖에 없었지만, 그마저도 완전히 믿을 수 있는 자료는 아니었다. 예를 들어 ‘묘족 마을’ 같은 작품은 수차례 수정과 개정을 거쳐, 어느 버전이 최신인지조차 헷갈릴 정도였다. 안무가들은 동작과 대형을 바꿀 권한을 갖고 있고, 올해는 기술적 난이도까지 한층 끌어올렸다. 그래서인지 ‘묘족’ 작품은 또 하나의 새로운 형태로 진화해 있었다.
작은 변화들은 있었지만, 예전 작품들을 다시 무대에 올리면서 우리는 많은 추억을 떠올렸고, 그동안 얼마나 성장했는지도 실감할 수 있었다. 낯익은 장면들이 끊임없이 이어지며, 마치 데자뷔가 반복되는 듯한 기묘한 감각에 사로잡히곤 했다.
막이 오르기 전, 나는 종종 눈을 감았다. 유백색 드라이아이스가 검은 말리 바닥 위로 부드럽게 퍼져나가는 순간, 등골을 타고 전율이 흘렀다. 무대 위에서는 ‘바다의 선녀들’이 유려하게 춤을 추고 있었고, 나는 4년 전 이 작품을 처음 배울 때의 서툴렀던 모습을 떠올리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 부채를 같은 높이로 드는 것조차 몇 시간씩 연습해야 했고, 물결처럼 일렁이는 효과를 맞추는 데에도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대당고리’ 역시 인상 깊었다. 연주자로서의 기량을 뛰어넘었을 뿐 아니라, 북소리 하나하나에 당대 남성들의 강건한 기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리고 수없이 반복해온 장면임에도, 손수건을 던질 때면 여전히 긴장이 밀려왔다. 내 ‘부메랑’을 공중으로 던지는 순간, 공기는 작년 투어 때와 똑같이 팽팽하게 얼어붙었다. 나는 시간을 앞당기려는 듯 더 빠르게 달리고, 더 빠르게 춤을 추었지만, 그 4분은 언제나 영원처럼 길게 느껴졌다. 땀에 젖은 손과 요동치는 심장은 긴장을 더욱 부추겼다. 무대 뒤에서는 모두가 숨을 죽인 채, 초록빛 손수건이 무사히 공중을 가르며 제자리를 찾기를 바랐다. 막이 내려간 뒤에야 비로소 큰 숨을 내쉴 수 있었지만, 그 여운 속에서 한동안 몸이 떨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어떤 감각들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
앨리슨 천 (Alison Chen)
Dancer
기고작가
2011년 7월 12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