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카네기 홀(Carnegie Hall) 무대에 선 션윈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플루트 주자 리자룽

션윈 수석 플루트 주자 리자룽 인터뷰

리자룽의 세상은 태양을 중심으로 돌듯 음악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 하지만 그녀에게 항상 맑은 하늘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대학원 재학 시절 다른 사람을 돕는 일에 관심이 많았던 이 연주자는 자신이 뿌연 안개 속에서 헤매고 있음을 발견했다, “내가 왜 음악을 했을까?” 라든가, “이 재주를 가지고 남을 도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또는 “전부 다 어떻게 될 것인가?”와 같은 질문들이 매일 매일 그녀를 괴롭혔다. 하지만 곧 뜻밖의 운명이 찾아와 새로운 목표를 향해 그녀의 음악이 가야할 길을 재 정의하게 만들었다.

Q: 어떻게 연주자가 되었는지?

CL: 나는 어려서 타이완에서 자랐는데 8살 때 부모님이 나의 과잉행동장애를 억제하려고 피아노를 배우게 했다. 3년 쯤 지나 우연히 타이완 “플루트계의 왕자”인 엘리 라이(Ellie Lai)가 TV에서 디즈니(Disney) 주제가를 연주하는 걸 보게 되었다. 나는 그 연주에 푹 빠져서 그때부터 플루트를 배우기로 마음 먹었다.

세계 최고의 연주자가 되고자하는 꿈을 안고 한 단계 한 단계 모든 목표를 성취해 나갔다. 하지만 석사학위를 위해 보스턴에 와서 보니 세상이 갑자기 너무 커보였다. 그래서 내가 배워야할 것이 여전히 무척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연주자로서의 나의 길과 인생의 목표를 다시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왜 음악을 전공했는지 나 자신에게 끊임없이 물었다. TV 프로그램으로 인해 플루트를 시작하게 됐던 과거를 회상하며 음악이 가진 힘이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음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았다. 나는 나의 음악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잠시나마 시름을 잊을 수 있기를 바랐다.

Q: 진로 계획은 무엇이었는지?

CL: 대학원 마지막 해는 내 인생에서 가장 당혹스러웠던 해였다. 내 주변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하며 졸업을 기다렸지만 나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 좋을지 몰라 많이 울었던 것만 기억난다. 직장을 구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을 테지만, 나에게 있어서 음악의 진정한 의미란 무엇인지, 또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으로 괴로웠다. 정말 길을 잃은 듯 막막했지만 음악으로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어야 한다는 느낌엔 변함이 없었다. 단지 그 방법을 몰랐고, 그래서 아무런 계획도 없었다.

가르치는 직업을 얻으면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도 있고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비록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 알지는 못했지만, 음악으로 그저 내 능력이나 증명하고 마는 걸 원하지는 않았다.

Q: 처음 션윈을 알게 된 계기는?

CL: 대학원을 마치고 한 친구가 나에게 션윈 채용공고 이메일과 홈페이지 주소를 포워딩해주었다. 중국 고전무용과 음악으로 중국의 전통문화를 되살리고자 한다는 그들의 사명(使命)을 읽는 순간 나는 눈이 번쩍 뜨였다. “그래! 바로 이거야!” 나는 생각했다. 문화를 복원한다는 부분이 매우 구미가 당겼다. 세상을 이롭게 하는 매우 의미 있는 일처럼 보였다. 그래서 다른 단원들의 동영상 프로필을 찾아봤고, 진정성 있는 그들의 모습에 매우 감동받았다.

Q: 그래서 오디션을 보기로 결심했나.

CL: 그렇다. 오디션에서는 션윈 작품을 주고 즉석에서 연주해보라고 했다. 이전에 중국음악을 연주해본 적은 없었지만 왜 그런지 매우 친숙하게 느껴졌다. 멜로디가 매우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즉각적인 교감이 이뤄졌다.

그건 아마도 내 배경 덕분이었을 것이다.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전통 서양음악을 공부하는데 썼지만 기본적으로 나 자신이 서양인이 아니다. 그건 내 문화가 아니었고, 뼛속 깊이 뿌리박힌 것도 아니었다. 동서양 악기가 결합된 션윈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이것이야말로 진정 나를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이구나 하고 깨달았다. 그제야 나는 내가 평생토록 공부하고 연습해온 이유를 알게 된 것 같은 그런 자유로운 감각을 느꼈다.

Q: 션윈 공연을 처음 본 것은 언제인지?

CL: 사실 오디션 보던 바로 그 날 밤이었다. 링컨 센터(Lincoln Center)에서였는데, 몇 번이고 울었다. 시작을 알리는 공(gong)이 울리자 강한 에너지가 뿜어져 나와 정신이 번쩍 들었고,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공연을 보면서 그렇게 감동받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나는 옆에 앉은 친구에게 ‘우리 문화가 이토록 아름답다니, 게다가 매우 전문적으로 서양사회에 널리 알려져서 정말 자랑스럽다.’ 고 말했다.

나는 막 오디션을 봤을 뿐이라 뽑힐 수 있을지 없을지 확신이 없었다. 하지만 공연을 보면서, 나는 션윈에 들어가는 것이 내 인생 최고의 영광이 될 거라는 예감이 가득 차는 것을 느꼈다.

커튼 콜 순간이 오자 나는 다시 또 울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무용수들이 무대로 다시 나와 작별 인사를 했고, 오케스트라 석의 연주자들도 일어서서 우리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나는 객석에 앉아있었지만 마음만은 오케스트라 석에서 관객을 향해 손을 흔들며 “안녕히 가세요, 내년에 다시 만나요!” 하고 인사했으면 하고 바랐던 것이 기억난다.

Q: 션윈에 들어온 것이 2012년이다. 그런데 몇 개월 지나지 않아 카네기 홀에서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데뷔를 했다.

CL: 카네기 홀에서 공연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와우, 드디어 그날이 왔구나. 이렇게나 빨리 오다니.”하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그 날은 션윈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생애 첫 콘서트이기도 했다. 솔직히 우리는 콘서트 전날 매우 흥분됐고 조금 긴장됐다. 우리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들은 모두 그 기회를 소중히 여겼고, 정신적으로도 완벽한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공연 중에 나는 뭔가 마법과 같은 것이 느껴진 적이 있었다. 그 때 나는 여덟 소절 동안 연주를 쉬는 때였다. 그래서 눈을 감고 조용히 앉아있었는데 놀랍게도 음악이 저절로 흐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우리가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신이 도와서 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다른 많은 연주자들도 그렇게 느꼈다. 예행연습을 하면서 전혀 도달하지 못했던 그런 수준, 그런 분위기를 경험하게 된 것이다.

Q: 션윈에 몸담은 지 2년이다. 오케스트라 일원이 될 것을 기대했었나?

CL: 실은, 공연 중에 오케스트라 전체가 매우 집중하는 그런 상태에 들어서게 되면 나는 엄청난 에너지를 느낀다. 그것은 내 연주를 통해 저절로 사람들이 모여드는 그런 잠시 잠깐의 여흥을 훨씬 넘어서는 일종의 에너지다. 확실히 무언가 나 자신보다도 훨씬 더 큰 것 같다.

나는 마음을 오롯이 연주에 두었을 때 관객들이 어떻게 즉시 그걸 느낄 수 있는지를 경험했다. 여기에서 보낸 2년이란 짧은 기간 동안 나는 예술가로서 내 자신이 향상된 것을 느꼈다. 또 음악과 삶의 진정한 목표도 발견했다. 나는 다음 단계로 끊임없이 꾸준히 올라가는 과정을 즐기고 있다. 그것은 영원히 멈추지 않을 여행이자 기쁨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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션윈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현재 3번째 투어 중에 있다. 리자룽과 함께 션윈은 10월 11일에 카네기 홀을 다시 찾을 예정이며, 이후에도 다섯 도시를 더 방문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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