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수 가방에는 무엇이 있을까?
평소와 다름없는 일요일 아침 8시였다. 내 첫 임무는 엘리베이터 러시아워를 뚫고 가는 것이다. 똑같은 스케줄로 움직이는 80명 단원들이 같은 시간에 호텔 엘리베이터를 타기 때문에 소위 교통체증이 발생한다. 로비에 도착한 나는 씩씩하게 호텔을 나와 커피 한잔을 샀다. 그리곤 늦지 않게 제 시간에 버스에 도착했다.
좌석에 편안히 자세를 취하고 깊은 숨을 내쉬었다. 이제 조(Joe)에서 사온 커피를 즐길 시간이다. 이 향기로운 커피…한 모금을 마시고는 바로 실망했다. 서두르다가 크림과 설탕을 빠트린 것이다. 이런 낭패가 있나. 옆 좌석에 앉은 동료에게 징징대는 소리를 해 댔다. 누군가에게 크림과 설탕이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모두들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데 몇 줄 뒤에서 희망의 소리가 들려왔다. 다름아닌 첼시 차이였다.
“다이애나? 크림이 필요해?” 우리의 수석무용수가 물었다. “나한테 분말 우유랑 꿀도 있어.”
첼시가 걸어오더니 자신의 더플백(천가방)을 열어보였다. 온갖 분말 우유며, 설탕, 맛있는 초콜릿까지 그녀만의 작은 슈퍼마켓을 담은 듯 했다. 우리 모두 깜짝 놀랐다. 더플백에 든 것들이 예상 외였기 때문이다. 첼시는 좀 멋쩍어하며 무대에서 해야하는 역할이 많아 에너지가 더 많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리는 커피와 우유에 대한 그녀의 열정에 놀랐다. 5개월 공연 기간 작은 여행가방과 더플백 하나만으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보통 이런 물건들을 중요하게 생각해 챙기지는 않기 때문이다.
단원들이 갖고 다니는 파란색 더플백에 우리 생각에 션윈 무용수로서 꼭 필요한 물건들을 챙기고 다닌다. 동료 무용수들에게 가장 많이 챙기는 물건이 무엇인지 물어봤다. 그리고 필수 아이템 목록을 작성해봤다.
무용수 가방에 들어 있는 필수아이템 상위 9개는 다음과 같다.
포포(papaw) 크림: 발효된 파파야라고 하면 그 냄새부터 싫다고 할 지 모르겠다. 하지만 션윈무용수들은 이 크림을 신뢰한다. 호주 단원들이 소개해 준 이 크림을 무용수들은 여러 용도로 쓴다. 뒤꿈치가 갈라지거나, 댄스플로어에서 마찰로 인해 발바닥이 화끈거릴 때, 그리고 스스로 낸 상처(머리에 발을 붙이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니다!)에도 바른다.
드라이샴푸: 빡빡한 공연 스케줄 때문에 공연 후에 쇼핑이나 외식을 해야 될 때가 있다. 이때 드라이샴푸가 요긴하게 쓰인다. 단단하게 땋아서 구불구불하고 땀에 절은 머리채를 순식간에 부드럽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머리핀: 윤이 나는 매끈한 쪽 찐 머리를 만드는 최고의 도구들이다. 앙증맞은 상자나 예쁜 주머니에 항상 고무줄이며 헤어핀을 잔뜩 갖고 다닌다.
휴대용 스위스칼: 유럽에 가면 꼭 사는 기념품이다. 스위스칼은 모든 무용수들의 필수품이다. 올이 풀리거나 손수건이 해지거나 갈라지나 상표가 잘 안 떼질 때, 이 요긴한 도구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연습용 의상: 흔히 무용수들이 입는 치마와 딱 달라붙는 타이즈 대신 우리는 셔츠와 팬츠를 입는다. 관리가 쉽기 때문이다. 검은색에 몸에 착 달라붙고 통기가 잘 되면 모두 연습용 의상으로 간주한다. 가끔은 여벌도 챙긴다. 집중적으로 연습할 때 온몸이 땀에 젖기 때문이다.
호랑이 연고: 대만처럼 습도가 높은 곳에서는 중국 가정의 필수아이템인 호랑이연고를 갖고 다니는게 좋다. 모기들이 정말 무자비하게 달려들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유명인들 추천 상품인 로즈버드 살브와 비슷하게 강한 향기는 오랜 버스 여행으로 몽롱해진 머리를 깨우는 역할도 한다.
노트: 올해 우리는 이전과는 좀 다른 선택을 했다. 더 건강하고 활기찬 생활을 위해 션윈 무용수들이 스마트 기기 없이 지내기로 한 것이다. 아이폰, 안드로이드, 태블릿 없이 말이다. 우리는 인터넷 과다 의존증을 벗어났고, 그 대신 보너스로 한층 더 서로를 가까이 느끼고 있다. 게다가 구식 수첩이 아주 요긴하다는 사실도 알았다.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이나 새로 발견한 현상, 해야할 일을 적을 때 화면이 정지되는 법도 없다. 애플은 가고 대신 몰스킨 공책이 왔다. 자신만의 폰트를 완성해가는 훌륭한 기회이기도 하다!
전법륜: 우리가 지닌 가장 소중한 아이템 중 하나인 전법륜. 긴장되고 바쁜 생활 중에 항상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게 하고 깨우침을 주는 책이다. 이 책은 항상 참되고[眞], 선하고[善], 인내하는[忍] 원칙을 지키도록 가르친다.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있다.
초콜릿: 초콜릿에 대해서는 첼시와 같은 의견이다. 가끔 추가적인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두 시간 이어지는 연습이 있을 때면 단원들이 연습실에 기라델리 초콜릿을 몰래 들여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세계 곳곳을 다녀본 결과 바삐 항상 움직여 다녀야 하는 우리네 여정에서 이 아이템들이 가장 실용적인 기능을 해주고 있다고 본다.
그럼, 여러분들 가방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궁금하다.
다이애나 텅 (Diana Teng)
무용수
2016년 3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