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宋)
송조(宋朝 960-1279)는 당조(唐朝)의 뒤를 이은 또 하나의 통일 왕조였다. 당조가 멸망한 후 중국은 53년간의 전란(戰亂)시기를 거쳤으니 역사에서는 이를 ‘오대십국(五代十國)’이라 한다.
960년 조광윤(趙匡胤)이 ‘진교병변(陳橋兵變)’을 거쳐 제위에 올라 송(宋)을 건립하니 그가 바로 송태조다. 송태조와 동생인 송태종의 노력으로 송나라는 중원과 동남지역을 통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북방과 서방 및 서남(西南) 지역은 여전히 여러 소수민족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송(宋)은 문(文)을 숭상하고 무(武)를 억제했다. 비록 양연소(楊延昭)나 악비(岳飛)와 같은 일대의 명장이 등장하긴 했지만 정치적인 원인 때문에 서하(西夏), 거란(契丹), 여진(女眞), 몽골(蒙古)과의 전투에서 여러 차례 패배를 맛봤다. 특히 정강(靖康) 2년(1127년)에는 휘종(徽宗)과 흠종(欽宗) 두 황제가 금나라에 포로로 끌려가는 치욕을 당했는데 이를 ‘정강의 치(靖康之恥)’라 한다. 휘종의 아홉째 아들 조구(趙構)가 장강을 건너 임안(臨安 지금의 항주)에 남송을 건립했다. 남송은 1279년 칭기즈칸의 손자 쿠빌라이 칸에 의해 멸망했다.
송조(宋朝)는 중국 역사상 경제가 가장 발달했던 조대(朝代)로 과학기술과 문화사업에서도 장족의 발전을 이뤘다. 4대 발명 중 나침반, 인쇄술과 화약이 모두 이 시기에 출현했다. 아울러 화기(火器)가 발달해 직접 전쟁에 이용할 수 있었다. 이 외에도 농업, 인쇄업, 제지업, 직물업, 도자기산업, 항해업 및 조선업이 아주 흥성했고 해외무역도 발달했다. 또 이때부터 지폐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 중국은 농업국가에서 상공업국가로 변모했으며 조정의 재정수입에서 농업 관련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속적으로 줄어들었고 상공업 관련 세금이 전체 재정수입의 70%를 차지했다.
송조는 또 사(詞)의 전성기로 ‘송사(宋詞)’는 ‘당시(唐詩)’와 이름을 나란히 할 정도로 중국 문학사상 쌍벽을 이룬다. 동시에 송조는 또 중국 서화(書畵) 예술의 전성기로 인물화, 화조화(花鳥畫), 산수화 분야에서 유명한 화가들이 배출되었다.
송조는 정치적인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느슨한 시대였고 문인(文人)들의 지위가 전례 없이 높아졌다. 경제적인 번영, 언론 자유 및 인쇄술의 발달은 지식인들이 더 자유롭게 사고하고 토론하며 자신의 사상을 전파할 수 있게 했다.
송조는 또 번진(藩鎭)이 할거하는 우환이나 환관 또는 외척이 전횡해 정치를 문란케 하는 일이 없었다. 문학, 사학, 철학, 과학에서도 모두 큰 발전이 있었다.
2011년 7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