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션윈 예술가들, 박해 중지를 위한 퍼레이드에 동참
2025년 7월 20일, 션윈 단원들은 중국에서 파룬궁 박해가 시작된 지 26년이 되었음을 알리는 퍼레이드에 뉴욕에서 수천 명의 참가자들과 함께했다.
션윈이 이런 행사에 참가한 것은 처음이었다. 수백 명의 션윈 예술가들이 간결하면서도 단정한 복장—셔츠에 검은색 바지 또는 치마—을 입고 엄숙하게 행진했다.
퍼레이드가 열린 차이나타운은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중국 커뮤니티 중 하나로, 이번 행사는 션윈에게 매우 이례적인 모습이었다. 션윈 공연에서는 막이 열리면 천상의 장면, 황궁의 뜰, 영웅적인 서사가 펼쳐지며, 관객은 한때의 위대한 중국의 장엄함에 휩싸이게 된다.
그러나 오늘날 중국의 현실은 바로 션윈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말해 준다.
션윈 창립자들은 중국에서의 잔혹한 탄압을 피해 탈출한 뒤, 한때 찬란했던 문명이 비극적으로 붕괴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리고 2006년 뉴욕 허드슨 밸리에 모여 두 가지 사명을 세웠다. 하나는 전통 중국 문화를 되살리는 것, 다른 하나는 현재 진행 중인 인권 탄압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었다.
이 예술가들은 불교 전통에 뿌리를 둔 명상 수련법인 파룬궁을 수련한다. 파룬궁은 1990년대 말 중국에서 7천만~1억 명이 수련할 정도로 매우 인기 있었다. 그러나 1999년 7월 20일, 중국 공산당은 이 수련을 근절하기 위한 잔혹한 박해 공작을 시작했다(자세한 이유를 읽어보세요). 이 공작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션윈 단원들에게 이 날짜는 단순한 역사적 이정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가족들이 겪은 비극의 무게를 함께 지닌 날이다. 현재 션윈 단원 중 약 100명 가까이가 이 박해로 직접적인 피해를 입었다(동영상 보기).

퍼레이드에 참여한 사람 중에는 션윈 수석 무용수 훙웨이 쑨(Hungwei Sun)도 있었다. 그는 여섯 살 때, 중국 경찰이 가족의 집을 급습해 파룬궁 수련의 신념을 이유로 어머니를 체포했으며, 어머니는 이후 7년형을 선고받았다. 아버지는 두 아들을 홀로 키워야 했다. 출소 후에도 경찰은 쑨의 어머니를 계속 괴롭히며 신념을 포기한다는 서명을 강요했다. 퍼레이드에 참여하며 우리는 쑨의 이야기와 같은 수많은 사례들을 떠올렸다.
차이나타운에서 션윈 예술가들은 “중국의 파룬궁 박해를 중단하라”, “26년간의 박해를 끝내라”는 문구가 적힌 배너를 든 다른 파룬궁 수련자들과 함께 걸었다. 일부 참가자들은 박해에 대한 정보를 담은 전단을 배포하거나, 혼란 속에서도 순수함과 희망을 지킨다는 의미의 연꽃을 나누어 주었다.
수년 동안 이 연례 행사에 대한 중국계 커뮤니티의 반응은 엇갈렸다. 중국 공산당의 선전에 영향을 받은 일부 사람들은 퍼레이드에 나선 수련자들을 괴롭히거나 심지어 공격하기도 했다. 그러나 점점 더 많은 해외 중국인들이 파룬궁의 진정한 성격과 중국 내 수련자들이 겪는 박해 실상을 알게 되면서 지지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퍼레이드를 지켜본 한 남성은 박해 전 중국에서 파룬궁의 인기를 목격했던 사람으로, 에포크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보세요, 26년이나 지났는데도 수련자들이 점점 늘고 있고, 젊은 수련자들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중국 공산당이 아무리 비방해도 사람들은 파룬궁이 무엇인지 압니다.”
다가오는 투어 준비 속에서, 이번 뉴욕 퍼레이드는 여전히 중국에서 박해를 받는 사람들과, 공산주의의 참혹함 이전의 아름다운 중국을 되살리려는 우리의 사명을 다시금 일깨워 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션윈을 보러 오는 이유는 안무, 음악, 의상 등 예술 그 자체이지만, 공연을 본 뒤 관객들은 션윈이 왜 존재하는지 더 분명하게 느낀다고 말한다.
우리는 매 공연마다 잃어버릴 뻔한 문화를 보존하고, 침묵당한 이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전하려 노력한다. 이번 퍼레이드의 희망의 메시지처럼, 그것은 중국의 가장 좋은 유산이 두려움 없이 공개적으로 이어질 수 있는 미래에 대한 비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