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아버지: 영웅 악비의 아버지
아버지의 날을 맞이하여 중국의 유구한 역사 속 ‘위대한 아버지’들을 회고하며 오늘날의 아버지상과 아버지의 역할에 대해 새로이 인식해 본다.
송나라의 전설적인 영웅 악비(1103~1142)는 오늘날 조국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한 상징적인 인물로 영원히 기억되고 있다. 그는 엄청난 역경에도 계속해서 침략자들을 물리쳤다. 무술의 달인이었으며 병사들에게는 인자했다. 그의 생은 비극적 결말로 끝이 났지만, 이후 악비는 수백 년에 걸쳐 충과 덕의 귀감으로 추앙받았다.
악비 이야기는 대개 그의 어머니가 ‘온 힘을 다해 나라에 보답하라’라는 뜻으로 ‘정충보국(精忠報國, 2007년 션윈 작품에 등장하는 이야기)을 그의 등에 새긴 것에 관한 것이다. 그렇다면 악비의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악비의 아버지는 악비가 아직 아기였을 때 익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적어도 한 허구적인 이야기에선 그렇게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역사 기록에 따르면 악비의 아버지는 악비가 청년이 될 때까지 살아 있었다고 한다. 또한 아버지의 든든한 지원과 자식 교육에 대한 열정 덕택에 악비가 위대한 지도자이자 영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한다.
기록에 따르면 악비의 아버지 악화(岳和)는 관대했으며 자식들도 이를 본받았다고 한다. 기근이 들 때면 가족들에게 밥을 조금 덜 먹도록 권하고 남은 음식을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나눠주었다. 이웃한 밭의 농작물이 자신의 밭까지 퍼져 자라면 수확할 때 주인에게 돌려주었다. 사기꾼들이 악화의 온화하고 선량한 성품을 이용해, 돈을 빌리고도 갚지 않거나 심지어 노골적으로 도둑질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악화는 대수롭게 여기지 않고 그냥 넘어가곤 했다. 그러자 점점 마을 사람들이 그를 가장 존경하게 되었다.
악화의 아들 악비는 순종적이고 총명한 아이였다. 악화는 개인 가정교사를 고용해 악비에게 역사, 옛 고전, 서예를 가르쳤는데, 악비가 무술과 문학에 능통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는 아들이 균형 잡힌 교육을 받으면 시야가 넓어지고 미래에 더 큰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악비는 공부에 있어 탁월했다. 그는 문학을 마스터하고 뛰어난 작가가 되어 나중에 만강홍(滿江紅, 강이 붉게 문들다)을 비롯한 많은 유명한 시를 지었다. 무술 훈련을 위해 악비는 진광(陳廣)이라는 스승에게 가서 창술을 배웠다. 악비는 곧 창술에 능해져 전국에서 그를 대적할 자가 없을 정도였다. 그러자 그의 아버지는 지역의 군사 영웅인 주동(周同)에게 악비를 보내 스승으로 모시게 했다. 주동의 엄격한 지도 아래 악비는 궁술에도 능해 왼손, 오른손에 상관없이 180kg이나 되는 활을 잡아 당겨 과녁을 정확하게 맞힐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중국은 북쪽에서 침략을 받았고 수도까지 위험에 처했다. 악화는 아들에게 나라를 위해 충성하고 기꺼이 희생하는 사람이 되라고 조언한다. 악비는 군대에 입대하여 잘 훈련된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여진족 침략자들을 상대로 많은 승리를 거두었고 마침내 강력한 장군이 되었다. 정치적 계략의 희생양이 되어 생을 마감하는 마지막 날까지도 악비의 핵심 가치는 흔들리지 않았다.
악화는 악비가 역사적 업적을 이루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악비에게 나라와 백성을 사랑하고 어질게 대하는 정신을 몸소 보여주었다. 또한 악비에게 균형 잡힌 교육과 전폭적인 지원을 제공하여 문학과 무술 모두에서 뛰어난 전문가로 키워냈다. 악비와 관련된 말 중에 ‘문학과 무술 모두에서 뛰어나다’라는 뜻인 문무겸비(文武兼備)라는 말이 있다. 악비의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이 말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악화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웅 중 한 사람에게 길을 안내했으며, 우리 세대에도 빛을 발하는 모범적인 아버지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